지난 1편에서 우리는 13개 식민지가 대서양의 물리적 거리 덕분에 약 150년 동안 독자적인 자치 문화를 쌓아왔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식민지 주민들은 스스로 세금을 걷고 법을 만들며 "우리 삶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자부심을 키워갔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이 '건전한 방임' 시대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거대한 전쟁 하나로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된다. 바로 1754년부터 1763년까지 벌어진 '프랑스-인디언 전쟁'이다. 이 전쟁이 왜 식민지와 영국의 관계를 파탄 내는 도화선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18세기 중반, 북아메리카의 패권을 쥐기 위한 영국과 프랑스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의 지지를 업은 프랑스와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은 오하이오 강 유역의 영토를 두고 치열하게 맞붙었다. 영국 국적의 표현이지만, 이 전쟁은 사실상 유럽에서 벌어진 '7년 전쟁'의 북미 전선이었다. 초기에는 프랑스와 연합한 원주민들의 기습 공격으로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가 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조지 워싱턴 당시 젊은 민병대 장교도 이 초기 전투에 참전했다가 쓴맛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의 막바지, 영국 본국은 엄청난 물자와 정규군을 북미 전선에 쏟아부었고, 결국 영국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다. 1763년 파리 조약이 체결되면서 프랑스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영토 대부분을 영국에 넘겨주었다. 식민지 주민들은 이제 서쪽으로 영토를 마음껏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며 열광했다. 프랑스라는 거대한 위협이 사라졌으니 이제 더 안전한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본국의 재정 상태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북미 대륙을 지키고 프랑스와 싸우느라 나라 곳간이 텅 비었고, 국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영국 정부의 시각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우리가 거대한 돈과 군대를 보내 너희를 프랑스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 전쟁 비용의 일부는 이제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마땅히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여기서 영국과 식민지 사이에 거대한 인식의 괴리가 발생했다. 영국은 식민지를 '본국을 위해 존재하는 자산이자 통제 대상'으로 보았지만, 식민지 주민들은 자신들을 '영국 국왕 아래서 자치권을 누리는 동등한 주체'로 여겼다. 게다가 식민지 주민들 입장에서는 본국 정부가 자기들 허락도 없이 전쟁을 치러놓고, 이제 와서 빚을 갚으라고 세금을 걷겠다는 처사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이 전쟁은 단순히 영토를 확장한 승전고가 아니었다. 150년 동안 이어져 온 영국의 방임주의 정책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킨 사건이자, 양측이 걸어갈 길이 완전히 갈라지는 결정적 변곡점이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영국 왕실은 식민지 지도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본국의 통제를 따르라"는 명분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이는 곧바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조세 저항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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