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편에서 우리는 프랑스-인디언 전쟁 이후 영국 본국이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에 대한 통제를 본격화했다는 점을 짚어보았다. 전쟁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영국의 입장은 현실적으로 이해가 가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본국 정부는 식민지 주민들의 의사를 전혀 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순간, 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저항의 불꽃이 튀어 올랐다. 오늘은 그 도화선이 된 설탕법과 인지세법, 그리고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라는 구호의 진짜 의미를 살펴보려고 한다.
1764년, 영국 총리 조지 그렌빌의 주도로 '설탕법(Sugar Act)'이 통과되었다. 이름은 설탕법이지만 사실상 당밀과 설탕뿐만 아니라 와인, 커피, 직물 등 식민지에서 수입되는 다양한 품목에 관세를 매기는 법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던 밀수 방지 목적의 법률을 강화한 것이었지만, 불황을 겪고 있던 식민지 경제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었다. 하지만 이는 비장의 카드가 아니라 워밍업에 불과했다.
진짜 폭탄은 바로 그다음 해인 1765년에 떨어진 '인지세법(Stamp Act)'이었다. 이 법은 식민지에서 발행되는 모든 공식 문서, 신문, 잡지, 심지어 법적 계약서, 달력, 카드와 주사위까지 종이로 된 거의 모든 품목에 특수 인지를 부착하고 세금을 내도록 강제했다. 일상생활과 상업 활동 전반에 직접 세금이 매겨지는 구조였다. 대서양 건너에서 일어난 이 조치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식민지 주민들이 폭발한 이유는 단순히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었다. 핵심은 절차와 권리의 문제였다. 식민지에는 영국의회에 자신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영국 헌정 질서상 국민은 자신들이 선출한 대표를 통해서만 과세될 수 있다는 오랜 전통(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이 있었는데, 본국 의회가 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우리 의회에서 뽑은 대표도 없는데, 왜 영국 의회가 우리 마음대로 세금을 걷어가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저항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식민지 전역에서 인지세 징수원들이 협박을 당하거나 집이 부서지는 등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상인들은 영국산 상품 불매 운동을 펼쳤다. 특히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 같은 비밀 조직이 결성되어 적극적으로 저항을 이끌었다. 당황한 영국 본국은 결국 1실의 실효성 없는 인지세법을 1년 만에 폐지했지만, 그 과정에서 "영국 의회는 식민지에 대해 어떠한 법률이든 제정할 전권을 가진다"는 선언법(Declaratory Act)을 함께 통과시키며 갈등의 불씨를 남겨두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규칙을 정할 때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인 통보를 받으면 누구나 반발하게 된다. 18세기 식민지 주민들이 느낀 감정도 정확히 이와 같았다. 세금의 액수를 떠나 자신들의 정치적 발언권과 자치 권리가 송두리째 무시당하고 있다는 공포가 그들을 거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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