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편에서 우리는 토머스 페인의 '상식'이 어떻게 식민지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독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로 향하게 만들었는지 살펴보았다. 왕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 흔들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대륙회의는 드디어 역사적인 중대 결단을 내릴 시점에 도달했다. 더 이상 영국의 신하로 남아있을 수 없음을 선언하는 것, 그것이 바로 1776년 7월 4일에 발표된 '독립선언서'다. 오늘은 이 문서가 전 세계에 던진 메시지의 진정한 의미와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한계를 함께 파헤쳐 보려고 한다.
1776년 6월, 대륙회의는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 위해 초안 작성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글 솜씨를 발휘한 사람은 젊은 법이자 사상가였던 토머스 제퍼슨이었다. 그가 쓴 독립선언서 초안은 단순한 독립 통지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자유와 평등의 선언문이었다. 선언서의 서두에 담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구절은 그 시절에 엄청난 충격과 울림을 주었다.
이 선언서의 진짜 메시지는 '국가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제퍼슨은 정부의 존재 목적이 오직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으며, 만약 정부가 그 권리를 짓밟는다면 국민에게는 그 정부를 뒤엎거나 새로운 정부를 세울 권리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는 왕이 곧 하늘의 뜻이라는 '왕권신수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권력의 원천이 오직 국민에게 있다는 '사회계약설'을 실천으로 옮긴 엄청난 사건이었다. 영국 국왕 조지 3세를 향해서는 그동안 식민지의 자치권을 유린하고 폭정을 일삼은 구체적인 죄목들을 낱낱이 열거하며 절연을 고했다.
하지만 이 눈부신 독립선언서에도 명백하고 뼈아픈 한계는 존재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외쳤던 토머스 제퍼슨 자신을 포함해 많은 서명인들은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선언서가 말하는 '모든 사람'에는 당시 뼈 빠지게 노동 착취를 당하던 흑인 노예들이나 땅을 빼앗기고 쫓겨나던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정치적 권리가 없던 여성들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즉, 당시의 '모든 사람'은 실질적으로 재산을 가진 백인 남성 중심의 국한된 개념이었던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과거의 위대한 선언을 무조건적인 신비화로 포장하거나, 반대로 그 시대의 한계만을 들어 모든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다. 독립선언서는 비록 태생적인 모순과 차별을 품고 출발했지만, 그 선언문이 담고 있는 "인간의 보편적 평등과 권리"라는 문장 자체는 이후 수백 년 동안 전 세계 수많은 민권 운동과 혁명가들에게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었다. 우리가 이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완벽한 사회가 완성되어서가 아니라, 비완성 속에서도 거대한 진보의 문을 열어젖힌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완벽하지 못한 상태에서 첫걸음을 내딛듯, 미국이라는 나라도 모순과 한계를 가득 안은 채 거대한 독립의 포문을 열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내뱉은 이상이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현실의 모순을 깨부수는 도구가 되었는지를 지켜보는 일이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