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편에서 우리는 1776년 7월 4일 발표된 독립선언서가 전 세계에 던진 거대한 자유와 평등의 메시지,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한계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사실 1776년 여름에 독립선언서가 발표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아메리카 대륙의 들판에서는 대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종이 한 장으로 영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당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영국 정규군을 상대로 실제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오늘은 독립선언서가 발표되기 직전, 식민지가 직면했던 초기 독립전쟁의 혹독한 위기와 조지 워싱턴 장군이 짊어졌어야 했던 거대한 고뇌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갈등의 방아쇠는 1775년 4월 19일,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마을 렉싱턴과 컨코드에서 당겨졌다. 영국군 지휘관은 보스턴 주변에 숨겨져 있던 식민지 민병대의 무기고를 압수하고 저항 세력의 지도자들을 체포하려 했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렉싱턴 마을 광장에 모인 70여 명의 민병대 앞에 영국 정규군이 나타났다.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는지, 즉 "역사를 바꾼 첫 총성(Shot heard 'round the world)"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 총성 한 방으로 8명의 민병대가 숨지고,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뒤이어 벌어진 컨코드 전투와 보스턴으로 퇴각하는 영국군을 향한 민병대의 게릴라성 공격은 본국을 경악게 했다. 농부, 대장장이, 상인들로 이루어진 오합지졸 민병대가 정예 영국군을 상대로 상당한 타격을 입힌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영국은 곧바로 막대한 병력과 용병을 투입할 채비를 마쳤고, 식민지 측은 제대로 된 군대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무기, 군복, 군자금, 식량 모든 것이 부족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제2차 대륙회의는 총사령관으로 버지니아 출신의 정치가이자 군경력이 있던 '조지 워싱턴'을 임명했다. 워싱턴이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그가 이끌어야 할 군대는 통일된 군복도 입지 않았고, 상관의 명령을 우습게 알았으며, 훈련 기간이 끝나면 언제든지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는 오합지졸 민병대였다. 대포와 화약은 턱없이 부족했고, 군자금을 대줄 중앙 정부의 재정 능력도 전무했다.
워싱턴은 정면 대결로는 영국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영국군은 전문 훈련을 받은 군인이었지만, 워싱턴의 전략은 달랐다. 무모한 전면전을 피하면서 군대를 최대한 보존하고, 민병대의 기습과 지구전을 통해 영국군의 보급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때로는 연패를 거듭하며 도망쳐야 했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 부하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며 속을 끓여야 했다.
우리가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도전할 때, 처음 마주하는 현실은 늘 상상 이상으로 차갑고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워싱턴과 초기 독립군이 겪은 시행착오 역시 화려한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끝없는 퇴각과 부족함 속에서도 조직을 다져나가는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었다. 완벽한 환경이 갖춰진 뒤에 시작하는 도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진짜 위기는 그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데서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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