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흔히 "영국의 압제에 분노한 식민지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총을 들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흔히 미국 독립의 배경으로 떠올리는 1770년대 사건들 이전에, 이미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서양 건너편에서 자라난 독특한 자치 문화가 있었다. 이 뿌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왜 그들이 그렇게 민감하게 영국의 세금 정책에 반발했는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오늘은 그 시작점인 13개 식민지의 형성과 그들만의 자치 전통을 살펴보려고 한다.
17세기 초부터 영국인들은 북아메리카 동해안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성공적인 정착지인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부터 종교적 자유를 찾아 떠난 필그림 파더스의 플리머스까지, 이주민들이 건너온 이유는 다양했다. 누군가는 일확천금을 꿈꿨고, 누군가는 종교 탄압을 피해 도망쳐왔다. 공통점은 본국인 영국으로부터 물리적으로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것은 몇 달이 걸리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격리는 독특한 현상을 낳았다. 영국 국왕과 의회가 대서양 건너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각 식민지는 스스로 먹고살고, 치안을 유지하고, 법을 만드는 방식을 체득했다. 예를 들어 1619년 버지니아에서 설립된 '버진 아실리(Burgesses, 하원 의회)'는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입법 기관이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대표를 뽑아 세금을 걷고 규칙을 정하는 경험을 대대로 쌓아갔다.
여기서 영국의 '건전한 방임(Salutary Neglect)' 정책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영국 정부는 초기 식민지들이 알아서 정착하고 경제적 기반을 닦는 동안, 이들에게 엄격한 통제를 가하기보다는 무역에서 이익을 얻는 선에서 대개 자율에 맡겨두었다. 식민지 주민들 입장에서는 "우리는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있고, 우리 손으로 뽑은 의회가 우리의 법을 만든다"는 인식이 당연하게 자리 잡았다. 내가 내는 세금은 내가 뽑은 대표가 결정한다는 민주적 자치 의식이 150년 동안 뼈속까지 스며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치에는 그늘도 명확했다. 식민지 개척이 진행될수록 원래 그 땅에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충돌이 격화되었고,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 노예 제도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자유와 자치를 외치던 식민지 지도층의 이면에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를 볼 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할 때 만족감이 크듯, 13개 식민지 주민들도 자신들의 힘으로 삶을 일구었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영국 본국이 이 자치권을 침해하려 들었을 때, 식민지 주민들이 느낀 배신감과 분노는 단순한 세금 몇 푼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오랜 삶의 방식과 권리가 송두리째 흔들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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