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편에서 우리는 혹독한 밸리포지의 겨울을 이겨내고 슈토이벤 장군의 훈련을 통해 정예 군대로 거듭난 대륙군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민병대가 체계적인 전술을 갖춘 군대로 성장하면서, 전쟁의 향방은 더 이상 영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수년 동안 이어져 온 피비린내 나는 독립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대영제국이 무릎을 꿇게 만든 역사적인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오늘은 독립전쟁의 실질적인 마지막 전투인 요크타운 전투와 영국의 공식 독립 승인을 이끌어낸 파리 조약의 전말을 파헤쳐 보려고 한다.
1781년 가을, 영국군의 핵심 장군인 찰스 콘월리스 경은 버지니아주의 해안가 요충지인 요크타운에 부대를 주둔시켰다. 해군력을 통해 언제든 보급과 퇴각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내린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조지 워싱턴과 프랑스 지휘관인 로샹보 백작은 육상에서, 그리고 드 그라스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 해군은 바다에서 완벽한 입체 작전으로 요크타운을 완전히 포위했다.
당시 프랑스 해군은 체사픽 만 해전에서 영국 해군을 물리치고 바다 길을 완전히 차단했다. 육지에서는 워싱턴의 연합군이 철저한 참호 공사 포위망을 좁혀오며 영국군을 압박했다. 대포 세례와 밤낮없는 총격 속에서 콘월리스 장군은 탈출할 도기도, 보급품을 받을 희망도 잃어버렸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그는 1781년 10월 19일, 결국 백기를 들고 8천 명이 넘는 부하들과 함께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요크타운 전투의 패배 소식은 런던에 있던 영국 의회와 국왕 조지 3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이미 수많은 전사자와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영국 정치권은 더 이상 북아메리카 전쟁을 지속할 명분도, 여력도 잃어버렸다. 의회는 전쟁 종식을 결의했고, 평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결국 1783년, 영국과 미국 대표단은 프랑스 파리에서 공식적인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파리 조약(Treaty of Paris)'이다. 이 조약을 통해 대영제국은 마침내 13개 식민지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영토 역시 엄청나게 확장되어, 북으로는 캐나다 국경, 남으로는 플로리다, 서로는 미시시피 강에 이르는 거대한 대륙의 주인이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작은 식민지들이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피 흘려 싸운 끝에 마침내 주권 국가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순간이었다.
우리가 삶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싸움을 묵묵히 버텨내다 보면, 결국 판을 뒤집는 결정적인 성취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요크타운의 승리와 파리 조약은 포기하지 않고 연대하며 끝까지 버틴 자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역사적 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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